서복 불로초 형상 부조에 대한 관심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6/06/01 [02:12]

 

함양군 마천면 서암정사에서 불로초 원정대형상의 부조(浮彫)가 발견됐다.

 

이 유물로 함양군이 심혈을 기울이는 2020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개최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다.

 

또 중국 관광객 유치 홍보에도 당당한 명분이 생겼다.

 

길이 3m 높이 3m의 화강암에 반원형인 이 부조에는 산신과 어린아이로 추정되는 2명이 가운데 있고 상상의 동물 해태와 산신이 된 서복(徐福)이 두 손을 모으고 기원하는 모습 앞에 불로초가 있다.

 

함양군은 이 부분에 대해 세 개의 가지와 다섯 개의 잎 모양이 또렷하고 가운데엔 산삼열매까지 새겨져 있어 불로초를 캐러온 서복이 불로초를 지키는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을 토대로 새겨진 이 부조의 불로초는 산삼이라고 주장한다.

 

서복은 기원전 255년에 제()에서 태어났다.

 

사기(史記)에는 서불(徐市)로 기술돼 있다.

 

사기 권6 진시황본기 및 권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衝山列伝)에는 기원전 221년에 6국을 복속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내보내 불로초를 구하러 사방으로 보냈으나 구해오지 못했다.

 

서불은 이때 자기가 불로초를 구하러 가야 할 차례임을 알고 진시황 28년인 기원전 219년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는데,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

 

이에 서불을 보내 동남동녀 수천을 뽑아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아오게 했다.

 

우리나라에도 서복이 지나갔다고 전하는 서귀포 정방폭포에 서복과차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한다.

 

제주도는 이미 삼국지와 후한서에 주호(州胡)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과 조선 초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는 서복이 언급한 삼신산은 모두 한반도를 가리킨 것이다.

 

봉래산과 영주산, 방장산은 한국의 금강산(金剛山)과 한라산(漢拏山), 두류산(頭流山)으로 추정된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지명 및 정방폭포의 서불과지(徐福過之)라는 글자는 오래 전부터 중국을 떠난 서복이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흔적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설화에 기초하여 서복전시관이 정방폭포 인근에 건립되었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전시관에는 진시황의 청동마차와 병마용갱(兵馬俑坑)의 실물 복제품과 친황다오(秦皇島)시에 있는 서복 비석 복제품, 원자바오 총리 친필 휘호가 새겨진 태산석(泰山石),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시가 기증한 서복동도상(徐福東渡像) 조각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함양군도 이런 희망을 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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