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씨름판의 전설, ‘양將軍’을 아십니까?

구본갑 논설위원 | 입력 : 2016/12/26 [10:33]

 

▲ 양기상 전 함양군씨름협회장. 1977년 레슬링국가대표, 1978년 서울 장충체육관 민속씨름 백두급 3품.     © 함양군민신문

 

○…함양(郡)에 전설적인 씨름꾼 두 사람이 존재했었다. 노한성(유림면)과 하준수(병곡면)…1922년생 노한성(신장 214미터)은 해방 이후 전국 씨름판을 호령했던 선수였다. 노한성은 큰 키를 이용한 ‘들배지기’가 일품인지라 감히 그를 상대할 선수가 없었다. 들배지기란 상대를 무릎 위로 들어올려 배지기로 던지는 것을 말한다. 노한성은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相撲  すもう)를 배웠다.


 스모 최고 타이틀인 요코주나의 아래인 오제키(두 번째 등급) 까지 올랐지만 1945년 일제폐망을 계기로 환국했다. 이후 노한성은 부산 수정1동에 거주하면서 부산경찰청 소속 무술 경찰관으로 복무했다. 그는 전국의 각종 씨름대회에 출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말년엔 대한씨름협회 부회장, 부산씨름협회 회장을 맡아 후학들을 양성했다. 1988년 3월 졸(卒).

 

▲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을 떠올리는 인물. 한국 씨름 1세대 선수 216cm의 거인 장사 노한성. 부산 경찰청 소속으로 전국 씨름계를 평정했다. 당대에 상대할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 함양군민신문


 하준수(1921년~1955년)는 6·25 전쟁 전후 조선인민유격대장을 지냈다. 빨치산의 상징적 인물이다.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우루목에서 하용현 면장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인텔리. 소설가 이병주가 쓴 대하소설 『지리산』에 하준수의 빨치산 행각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하준수는 합기도 가라데(空手 からて)의 달인으로서 씨름에도 일가를 이룬 장사였다. 해방 전후 진주 씨름판을 휩쓸었다.

 

▲ 빨치산의 상징적 인물 하준수(이명=남도부),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조선인민공화국 최고 훈장인 자주독립훈장을 받은 유일한 빨치산이며 전투에서 언제나 앞장섰고 적군들에게는 초조한 빛을 보이는 적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을 얻었다.     © 함양군민신문


 이 두 사람 외에 함양을 빛낸 씨름꾼으로는 소판구(안의면 용추골), 강호성(면장출신), 양기상 (레슬링 국가대표) 등이 있다. 


 ○…지난 12월 19일 오후 6시 30분, 함양군체육회는 함양읍고운체육관에서 300여 명의 체육인과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2016년 함양군체육인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임창호 군수, 임재구 군의회의장, 김정옥 교육장, 진병영 도의원, 박병옥 군의회부의장, 황태진 의원 등 주요 내빈도 참석해 체육인의 노고를 격려하고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함양군 체육인상은 양기상 함양군씨름협회 감사, 공로상은 함양군 그라운드골프협회·이경섭 함양군 파크골프협회 경기이사·양만수 함양군 태권도협회 부회장·이상규 함양군 배드민턴협회장 등이 수상했다.

 

◆김성률 천하장사 문하생 
 ○…양기상(梁基祥) 씨가 함양 체육인상을 수상했다는 낭보를 듣고 (필자는) 양 씨에게 전화를 했다. “양 장군(將軍), 대단한 상을 받았네요, 이번참에 대포 한잔 하면서 함양의 씨름계, 함양 체육계의 이면사(裏面史), 양 장군의 스포츠 편력 등을 총정리 함양군민신문에 특집보도 한번 합시다.” “이면사가 뭐요? 나는 고렇게 어려운 말은 몰라, 후딱 와서 대지식육식당에서 맛있는 삼겹에 소주 한잔 합시다. 후딱 오소.”


 183미터에 96kg 거구 양 장군은 현재 안의면에서 현대화재 보험 일을 하고 있다. 따님은 미스경남에 출전한 미인에다가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모는 또 어떻고. 절세가인이다. 필자는 양 장군의 스포츠 편력을 취재하기 위해 안의면으로 갔다. 취재장소는 안의면 대지식육식당.  


 “만일, 양 장군이 1980년 이후 출생했더라면 오늘날 시골 한 귀퉁이에서 보험 일 안하고, 그 뭐냐 강호동 이만기 최홍만 같은 스포츠엔터테이먼터로 각광을 받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제가”


 “흐흐, 씰데없는 소리. 자, 자, 소주나 한잔 받아요.(사이) 당신, 방금 왜 그런 말 나에게 하닝교?”


 “양 장군이 한창 선수할 때 그러니까 1970년도 우리나라 체육계가 너무 가난, 선수로 뛰어봐야 별재미를 못 느꼈다 이 말입니다”


 이 말에 양 장군이 한숨을 푹 쉰다. “묵을 끼 없어가꼬 다리 밑에서 가마떼기 깔아놓고 신혼생활을 했으이 달리 무슨 말을 하겠노. 그때 뭐 연봉이 있었나, 진짜 비참하게 선수생활을 했지, 씨름판에 나가 소를 타야 그걸로 1년 묵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 그러나, 나, 말이오,  젊은 시절, 체육선수 한 거 절대 후회 안 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제 청문회 봤소? 그 뭐냐 노승일이라고 하는 놈, 최순실 밑에서 비서한 놈, 노승일 그 자석, 국회 청문회에서 아주 멋있게 말하데. 나는 체육인출신이다. 체육인은 정의와 진실의 사도다, 나는 체육인 출신이라 정의파다. 고로 나는 최순실의 비리를 폭로한다. 이로써 내가 깜빵 가도 아무러치도 않다, 이 올마나 멋있소. 쾌남(快男) 그 자체잉거라, 우리 체육인들은 머리가 좀 나빠도 솔직담백한 게 있지”


 “그래, 어떻게 해서 양 장군은 씨름선수가 되었나요? 양 장군의 미니 자서전을 한번 들어봅시다”


 1955년 12월 3일 함양군 안의면 장자동 율림마을에서 출생했다. 조부는 안의면, 아니 함양군의 최고 화타 양동근 翁(한약국 경영), 부친은 안의초중고를 나와 서울대농대를 나온 양종용, 모친은 서하면 봉전댁 박봉순.


 “추억을 되살려보면 흐흐흐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큭큭, 나를 무지 미워했지, 만날 나를 패! 올마나 많이 얻어 터졌는지 아직도 뼈가 욱신해, 왜 맞았느냐? 공부 안 한다고. 나는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놈이야, 삼각함수, 로고 이런 것 지금도 난몰라, 중학교 댕길 때 축구 씨름을 했는데 그기 나무너무 재밌더라구, 아부지는 오함마 비슷한 거를 들고와 축구하몬 반피(반푼)된다하몬서 나를 패대기치고, 그라몬 나는 하이방(도망) 까고…그렇게 체육을 항거라. 글다, 중 3때 거창군에서 전국 장사씨름대회가 있었는데, 그기 나가 내가 우수한 성적을 얻응거라. 이때 천하장사 김성률 선생께서 말이요, 이 위대한 준재(俊才)를 발견, 나를 전격적으로 스카웃을 항거라”


 당시 김성률 장사는 요즘, 김연아 못지않았던 스포츠 톱스타였다.


 김성률(金成律·1948~2004)은 1970년 제7회 대통령기 전국장사 씨름대회부터 1977년 제14회 대회까지 8년 연속 장사부 1위를 하였으며, 1971년 제25회 전국 씨름 선수권 대회 일반부 우승, 제7회 전국 장사 씨름 대회 겸 제14회 전국 종별 씨름 선수권 대회 3연패를 달성하였다. 1972년 제1회 KBS배 전국 장사 씨름 대회에 출전, 1976년 대회까지 5연패를 이루었다. 1983년부터 2004년 5월까지 경남 대학교 사범대학 체육 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승삼, 이만기, 강호동 등 수많은 씨름 스타를 배출하였다.


 “어느 날 김성률 선생한테서 전보가 왔어, 마산에 내려와 내 밑에서 씨름을 배워라!”


 1974년 양 장군은 마산시(당시) 창동 김성률 가(家)에서 기숙하면서 본격적인 씨름 훈련에 임하게 된다. 김성률 장사는 양 장군에게 씨름에도 도가 있다, 선수가 되기 전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격체가 되라고 훈령을 내렸다.


 씨름은 ‘씨놀음’이 단축된 말이다. 그렇다면 ‘씨’는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씨는 우주적 원력이다. 티벳 네팔 요기(요가수련자)들은 명상을 통해 우주슈퍼에너지를 획득한다. 씨름꾼들 역시 모래판에서 타인과의 한판승부를 벌이면서 우주적 원력을 발산시킨다. 모래판에서 우주적 원력을 발산 ‘씨놀음’하는 것이 바로 씨름이다.

 

▲ “씨름은 한자로는 각저(角抵)ㆍ각희(角戱)ㆍ상복(相撲)이라고 쓰니, ‘角’은 겨룸, ‘抵’는 달겨듦의 뜻이므로, ‘각저(角抵)’는 곧 ‘달려들어 힘겨룸’이라는 뜻입니다. 예기(禮記)ㆍ월령(月令)에 ‘맹동(孟冬)의 월(月)에 천자(天子)가 장수(將帥)에게 명하여, 강무(講武)코 습사어(習射御)코 각(角)케 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함양군민신문


 씨름은 인간적인 몸짓에 서 출발하고 있다. 그 몸짓이 씨름에서는 동작(動作)으로 표현되며 동작의 특징은 공격과 방어 기능의 수단으로서 행동발현에 기초하고 있다. 씨름기술의 특질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체계이다.
 김성률 장사한테서 씨름기초를 배운 양 장군은, 다음으로 황경수 장사 문하생(門下生)이 된다. 황 장사는 전 현대코끼리 씨름단 감독으로 천하장사 이만기를 키운 멘토이다. 양 장군은 황경수 한테서 무수한 씨름 기예를 배웠다. 


 “흐흐 황 장사님이 나에게 앞무릎뒤집기를 갈차 주데. 앞무릎 뒤집기는 상대의 앞무릎을 치면서 자기의 상체를 뒤로 뒤집는 걸 말해요. 앞무릎당기기, 상대의 앞다리(무릎)를 두 손으로 당기며 챈다. 앞무릎짚고밀기, 상대의 앞무릎을 짚고 밀어 붙인다…그런걸 배우고, 시합에 나갔지, 그때 말여, 우리 스승 김성율 장사가 천하제일이었는데 오메? 고딩학생 한 놈이 스승을 무찌른 사건이 있었다카이, 고노마 이름이 뭐였더라? 응 홍현욱!”


 천하장사 김성률. 970년부터 1976년까지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 7연패·KBS배 전국장사대회 4연패 등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1970년대 모래판을 평정했다. 그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부상으로 차지한 황소만도 무려 130마리에 이르렀다. 당시 김성률 장사를 보기 위해 서울 장충체육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김성률은 1970년대 중반 들어 신예 홍현욱에게 무릎을 꿇게 되면서 내리막을 걷는다.


 “으하하하 그런 대형사건이 있었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내가 스승의 원한(?)을 복수하기 위해 홍현욱에게 도전장을 내 밀었지?”


 “그래서요?”


 “내 비장의 무기, 맞배지기(두 사람이 같이 무릎을 맞댄 상태에서 힘으로 당겨 올려서 상대를 던진다), 엉덩배지기(공격자의 엉덩이가 깊숙이 상대의 배 밑으로 들어가서 크게 던진다)로 고대로 홍현욱이를 내평겨 쳐 이겼다 이 말씀이야!”


◆모스크바올림픽파견최종선발대회에서 1위
 1980년대 들어 양 장군은 레슬링계로 진출한다. 전적이 화려 무쌍하다.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파견최종선발대회에서 자유형 100kg 1위, 1982년 아시아경기대회 파견 제1차선발대회 자유형 100kg 1위, 1983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파견선발대회 1위….

 

▲ 젊은 시절 양기상 씨. 씨름, 레슬링 대회에 출전 각종 상을 휩쓸었던 풍운아였다.     © 함양군민신문


 그러나 양 장군은 가족의 봉양을 위해 체육계를 떠나게 된다. 보험업무에 간여하는 한편 향리 함양에서 후학들을 위해 씨름 보급에 헌신한다. 2014년 이색적인 기사 하나가 떴다. 제목은 ‘환갑 나이에 레슬링에 출전 금메달 2개 획득!’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53회 경남도민체전 레슬링에 출전한 양기상(62) 씨가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2014년 6월14일, 15일 사전경기로 김해 분성고등학교에서 열린 레슬링 헤비급(120㎏이하)에 자유형과 그레꼬로망형에 출전한 양기상 선수가 환갑의 나이에 불구하고 금메달을 획득해 함양군이 5위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


 양기상 선수는 현역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전국체전 및 전국대회에서 금메달 28개, 은메달 7개 등 35개의 메달을 획득한 독보적인 선수다. 은퇴 후 30년 만에 도민체전에 출전해 레슬링 시합장에서 모두가 깜짝 놀랐으며 다시 선수로 뛰어도 되겠다며 양 선수에게 환호와 격려를 보냈다.


 양 선수는 도민체전 출전과 관련 군체육회는 물론 도체육회에서도 만류를 하였으나 “함양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 고민 끝에 결정했다.”며 “다시 운동복을 입기까지는 내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함양군과 체육회는 함양의 보물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양기상 씨는 전 함양군 씨름협회장을 역임하면서도 경상남도 씨름왕 선발전을 함양에 유치해 함양군 씨름을 종합우승으로 이끌었다.
 
 ○…안의면 대지식육식당에서 양 장군은 인터뷰를 하다말고 벌떡 일어나 그 당시 (제53회 경남도민체전 레슬링 시합) 모습을 재현한다.


 “나이 60 너머 금메달 2개라? 대단하십니다. 가히 양 장군은 함양 체육계의 대들보이십니다. 끝으로 함양 씨름 발전에 대해 이야기 좀 해볼까요? 현재 함양 씨름을 움직이는 인물은 누굽니까?”


 “함양씨름협회 회장은 문창영 동지가 맡고 있지요. 오일창 전 함양군교육장, 황태진 전 함양군의장, 김영섭, 박길동, 박성도, 최상희, 최병률 김원식(안의중교사) 등이 함양씨름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고. 함양씨름협회는 2000년 창립발기했습니다. 초대회장은 노두식, 2002년 제1회 추석맞이 함양구민씨름대회가 열렸고 지금 제14회를 맞이하고 있소. 2016년 경우 공설운동장 옆 호연정 특설무대에서 씨름대회를 개최했지”

 

▲ 추석맞이 함양군민씨름대회. 함양군체육회가 주최하고 함양군씨름협회가 주관한다. 이 대회는 추석맞이 씨름을 통해 군민의 단합과 화합분위기를 조성하여 군정 발전에 기여하고 매년 대회를 개최하여 전통 문화 계승에 목적을 두고 있다. 초ㆍ중ㆍ고 학생부와 남ㆍ여 개인전 및 함양장사, 읍면 대항 단체전으로 승부를 가른다     © 함양군민신문


 “함양군 초·중·고 중에 씨름을 독려하는 학교는?”


 “안의중입니다.  씨름명문이지. 2010년 안의중학교 여학생 씨름부는 전남 구례군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제2회 국민생활체육 전국여자천하장사 개인전 씨름대회에 출전, 유혜진(당시) 학생이 난초급에서 전국 씨름여신들을 제치고 3위에 입상해 트로피와 5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었지. 흐흐. 안의중학교 씨름부가 일약 씨름명문이 된 데에는 대학시절 씨름으로 명성을 날렸던 이 학교 김원식 체육교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야”


 “끝으로 양 장군, 체육인으로서 일생을 살면서 어떤 보람을 있었나요”


 “체육에 이바지한 공로로 1984년 부산시민의 표창을 받았고, 1985년 부산시 제6회 빅스타 최우수상 수상, 2014~2016년 경남도민체전 레슬링 연속 3회 금메달 획득, 이번에 함양군체육인상을 받은 게 보람이었다면 보람이었소”


 “앞으로의 소망은?”


 “함양군내 유망한 씨름 아동을 발굴, 제2의 이만기 강호동 홍현욱이로 맹길어보능기 내 소망이라 하하하”
 안의면 대지식육식당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다. 양 장군 따님(양수정)이 필자 휴대폰으로 아버지 젊은 시절 선수 사진을 전송하고 있다. 그 소리, 안주 삼아 양 장군과 소맥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밤 10시가 넘고 말았다.


구본갑|논설위원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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