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호랑이 ‘부적’ 그리는 서양화가 이목일

구본갑 논설위원 | 입력 : 2018/02/28 [14:06]

▲ 중앙대학교 회화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 심사위원/ 한국장애인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서양화분과 이사     © 함양군민신문

 

◆호랑이의 형광눈은 직반사를 일으켜 섬광처럼!


 함양군 마천면에 사는 시인 문길 선생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우리 어무이는 만신(卍神)만신이었다네. 지리산에 산 기도를 자주 다녀셨지. 눈보라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날, 어무이는 과일 초 향을 들고, 아버님과 함께 한신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합니더. 눈발은 하나둘씩 그치고, 깊은 밤하늘엔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르고, 지리산 꼭대기에선 으르릉거리며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은 불어오고, 어무이께서 바위 위에서 산기도 올리실 제, 아버님은 그때 뭘 보았답니다, 호랭이 다섯 마리가 어무이 쪽으로 다가 오는 걸요, 호랑이의 형광눈은 직반사를 일으켜 섬광처럼! 호랭이가, 어무이 주변을 마치 탑돌이하는 것 마냥 무리 지어 도는 게 아닙니꺼, 아버님은 혼비백산했지만 어무이는 그 호랑이를 포근한 눈으로 바라보며, 계속해 산기도를 드렸다고 하더라”

 

▲ 백두산 호랑이.     © 함양군민신문

 

20년전만 해도 지리산엔 호랑이가 살았다 한다. 증언자는 백무동 옛고을 주인, 이 양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20년전, 지리산 호랑이 생존설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신성시했다. 호랑이한테 벽사(나쁜 기운을 퇴치함)의 위력이 있어 정월이면 벽사용 세화로 용호도를 그린다던가 자식들 이름 속에 호랑이 호(虎)를 집어 넣었다.

 

지리산 호랑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이목일, 함양군 수동면 출신. 중앙대학교 미대를 나왔다. 2003년 한인 미주 이민 100년을 기념해 뉴욕에서 호랑이 1만마리 전시회를 가져 미국 언론에 소개됐다. 특히 2004년 미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가 그의 호랑이 판화 작품 12점을 사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목일 화가가 그린 지리산 호랑이 그림을 보노라면 지리산의 웅혼미(雄渾美)를 체험할 수 있다. 이목일 화가는 지리산을 즐겨 그린다. 지리산을 그리되 북두칠성, 호랑이 등 우주기운이 깃든 영성적 그림을 즐겨 그린다. 이들 자연의 사물들은 작가의 내면에서 그 자신과 일체화 되어 저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생명체로 되살아 나 화면 속에서 기운을 분출하고 있다.

 

이목일을 만나 왜 호랑이 그림에 천착하는지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지리산 암자 산신각에 가면 산신도가 있다. 그 산신도엔 꼭 호랑이가 등장한다. 왜? 호랑이는 신수(神獸)이기 때문이다. 또 호랑이는 죽은 사람 산 사람을 위해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동물로 우리 민족에게 각인되어 왔다. 언젠가 지리산 금대암 산신각에 가 호랑이를 보았다. 대저 산신도 속에 그려진 호랑이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해학적이거나 약간은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모습의 호랑이를 보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그래, 저 모습이야말로 부처님 가피와 같다, 저 모습을 변형, 화폭에 담아보자!”

 

▲ 가로길이 24,7cm, 높이 25,7cm의 화선지에 그려진 호랑이 그림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세를 느낄 수 있다. 화면 정면에 호랑이의 부릅 뜬 눈속에서 우주의 정기가 분출한다. 호랑이 한 마리가 지리산을 질주하고 있는데 그 움직임 속에서 바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 함양군민신문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작가가 그린 호랑이 그림은 좀 익살스럽다?

 

 “익살이라기 보다, 친근감이라고 말해야지. 산신도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 포즈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그림 속 호랑이는 신신의 심부름꾼 혹은 시봉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가, 우리 인생살이도 그렇지 않은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자가 남에게 해 끼치는 자보다 훨씬 아름 답지 않은가?”

 

 호랑이는 교미할 때, 수컷끼리 암컷을 둘러싸고 격렬히 싸운다.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임신기간은 105~113일이고, 한배에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성장이 빨라 2주 후에는 눈을 뜨고 4~5주 때 걷기 시작하며 8주가 되면 젖을 뗀다. 7개월째에는 스스로 먹이를 잡을 수 있게 되는데, 2세까지는 어미와 지내며, 그동안에 사냥훈련을 받고, 젖을 떼면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새끼에게 처음으로 먹이를 맛보게 한다. 새끼는 주로 암컷이 돌본다.

 

▲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고 하였다. 이러한 호랑이 숭배 신앙는 산악 숭배 사상과 융합되어 호랑이가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는 지방 도처에서 신봉하는 산신을 모신 산신당의 산신도(山神圖)에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호랑이가 우리 민족에게 신수(神獸)로 받들어진 것은 오래 된 일이다.     © 함양군민신문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에서는 호랑이굿을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넋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쇠머리를 뒷산에 묻는 의식을 치른다. 호랑이 역할을 맡은 박수가 종이로 만든 호피로 머리와 몸을 감싸고 등장해 닭을 잡으려 할 때 포수가 총을 쏘아 잡는다. 그리고 가죽을 벗겨 제주에게 줘 호피 값을 받고 태우면 굿이 끝난다. 이는 호랑이와 포수 두주역이 연출하는 놀이이나 신앙성을 띤 간절한 기원이 깃들여 있다. 특히 굿 끝에 사람 대신 쇠머리를 가져가라고 뒷산에 묻는 것에서 신앙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위협과 회유 기원으로 마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지혜가 신앙적으로 나타난다.

 

 -호랑이 그림 그릴 때 가장 유의하는 점은.

 

 “호랑이 눈 그릴 때! 그 눈에 모든 기를 넣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호랑이 눈에 대우주의 본심(本心)을 집어 넣아야 하는데!”

 

 -본심?

 

 “호랑이의 마음을 정신(精神), 자연의 마음을 귀신(鬼神), 창조주의 마음을 진아(眞我)라 한다. 이 세 마음을 본심이라고 하지”

 

▲ 이목일의 그림 중심 주제는 대자연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자연은 인간의 밖에 차갑게 존재하는 사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에 의해 영혼이 이입(移入)된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자연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그려내는 자연풍경은 전통적인 풍경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 함양군민신문

 

 ◆호랑이 그림 그리기 위해 28수(宿) 연구


 -대자연의 마음이 귀신이라?

 

 “내가 좋아하는 염력가 태희영사(太希靈師) 정명철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귀신은 인간의 마음에 원초적인 힘을 제공해주는 질료적인 에너지다. 귀신은 정신과 물질로 구성된 두 실체 사이에 공시성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예정된 조화를 부릴 줄 안다. 이 분 말씀대로, 구신은 별 게 아니다, 지리산 물소리가 금대암 뜨락에 핀 모란꽃이 귀신이다. 나는 호랑이 그림에 귀신의 기를 불어넣기 위해 즐겨 지리산을 오르내리곤 한다”

 

▲ 호랑이는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호랑이 그림이나 ‘虎’자 부작(부적), 단오에 궁중에서 나눠 주었다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에서도 이같은 뜻을 볼 수 있다.     © 함양군민신문

 

 -호랑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28수(宿)를 연구했다는데?

 

 “천문학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 28수의 의미를 알아야 진정한 호랑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이론만 익혔다네. 28수는 일월 오성의 위치를 관측하는 좌표일 뿐만 아니라 그 중 어떤 별자리는 세(歲) 시(時) 계절을 헤아릴 때의 관측대상이 되기도 한다네, 28수는 각각 몸을 동서남북 방향에 두고 있지. 동방은 창룡, 북방은 현무, 서방은 백호, 남방은 주작 모습을 하고 있지, 여기서 서방 백호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네”   
 
 -작가의 호랑이 그림에는 북두칠성이 자주 등장한다. 뭘 의미하나?

 

 “옛사람들은 북두를 매우 중시했다. 그 까닭은 이를 이용해 방향을 알고 계절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 초저녁에 두병(斗柄:표주박의 자루부분) 이 가리키는 방향에 근거하여 각 계절을 결정했다더군. 두병이 동쪽을 가리키면 천하는 봄이 오고, 남쪽을 가리키면 여름, 서쪽을 기리키면 가을, 북쪽을 기리키면 겨울! 나는 북두의 위대함을 그리고 싶었네”


구본갑 논설위원busan707@naver.com

인월당 18/02/28 [15:18] 수정 삭제  
  음.........호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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