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와 예멘이 한 왕국일 때 커피가 나왔다?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8/04/11 [09:46]

 

▲ 영국-캐나다-미국의 발굴팀이 시바 여왕의 신전 등을 발굴해서 실존한 역사임을 입증했다. 출처=커피인문학(인물과사상사)     © 함양군민신문

 

커피기원, 솔로몬왕과 시바여왕 거쳐 에티오피아 시대
예멘과 에티오피아 전쟁 중 전사들을 통해 커피 전파      
     
커피의 기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시작해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시대(기원전 10세기경)를 거쳐 에티오피아 시대를 맞게 된다.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낳은 메넬리크 1세가 에티오피아 초대 국왕이 됐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이 서로 커피의 기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두 나라가 본래 한 나라였다면 이런 논쟁은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나 에티오피아의 초대 국왕이 되는 메넬리크1세가 십계명을 보관한 법궤(Ark of the Covenant)를 에티오피아로 가져왔다는 설을 표현한 작품. 출처=위키피디아     © 함양군민신문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메넬리크가 청년으로 성장해 아버지인 솔로몬왕을 찾아간 대목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솔로몬왕은 메넬리크가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했으며, 그가 시바로 돌아갈 때 성직자와 학자-기술자 등 1만 2000명의 유대인을 동행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 모세가 하늘에서 받은 십계명을 보관한 법궤(Ark of the Covenant)를 메넬리크 편에 에티오피아로 보냈다는 설이 있다. 이 법궤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960km가량 떨어진 악숨의 ‘성 마리아 시온교회’에 안치돼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법궤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티오피아는 이처럼 시바 왕국에서 나왔다. 시바가 에티오피아를 품고 있던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Murano) 수도원에서 1459년 제작한 세계지도에는 시바의 도시들이 에티오피아에도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에티오피아와 예멘 지역 모두 시바 왕국의 영토였다. 홍해에는 바다의 폭이 8km 정도인 곳이 있어 오래 전부터 양측의 왕래가 잦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예멘 쪽의 시바인들이 에티오피아에 정착한 것으로 관측된다.

 

에티오피아에서 전해지는 시바의 여왕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시바의 여왕이 악숨에 수도를 정하고 동아프리카 전 지역과 예멘을 다스렸다고 주장한다. 건국신화에서 시바의 여왕은 흑인이며 이름은 '마케다(Makeda)'인 것으로 묘사된다. 에티오피아 역사학자들은 시바의 여왕이 당초 에티오피아에 살았다고 주장한다. 악숨에는 시바 여왕의 궁전이라는 고대 건축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어떻게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을까?

 

시바 왕국 이후 양측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예멘은 지형상 비가 오면 물이 고여 있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흘러나간다. 이 때문에 시바 왕국은 수도였던 마리브에 ‘그레이트 마리브댐’을 지었다. 이것이 예멘을 부흥으로 이끈 원동력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국가의 쇠퇴를 부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시바 왕국의 말기에 관리 소홀로 인해 댐이 일부 무너져 내렸고, 사람들은 예멘을 떠나 북부로 이주했다. 국민이 빠져나간 시바 왕국은 힘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몰락했다.

 

예멘 땅에는 '힘야르 왕국(B.C. 115년~A.D. 522년)’이 출현하게 된다. 힘야르(Himyar)는 예멘 남서부 고산지대에 살던 시바 왕국의 유력한 부족들로 같은 셈족이었다. 이들은 유향나무 경작민들로서 정착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부근이 오늘날 예멘 커피의 주산지이다. 그러나 이들이 당시 커피를 먹거나 재배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물증이 없다.

 

당초 다신교를 흠모하던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을 만나면서 유대교로 개종한다. 이후 유대교인이 된 시바인들은 힘야르 왕국 때 기독교를 접하고 점차 개종하게 된다. 그러나 힘야르의 마지막 왕인 두 누와스(Dhu Nuwas 450~525)는 예멘과 에티오피아에 널리 퍼진 기독교를 몰아내기로 작정한다. 예멘 북부 나즈란(Najr?n)의 기독교인들에게 유대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자 불에 태워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에티오피아는 이 때 나자쉬(Najashi)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상태였다. 나자쉬는 기원후 530년 기독교의 수호자인 유스티누스(Justinus) 로마 황제에게 선박 지원을 요청했고, 7만여 에티오피아 병력이 원정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두 누와스 왕은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전쟁에서 패배한 예멘은 에티오피아의 식민지가 됐다. 이 전쟁 속에 에티오피아 전사들을 통해 커피가 예멘으로 전해졌다는 견해가 있다.

 

이후 페르시아로 도망간 힘야르의 왕자의 요청에 따라 기원후 600년경 페르시아 군대가 예멘에 파병돼 에티오피아인을 몰아냈다. 이로써 70년간 이어진 에티오피아의 예멘 통치는 막을 내렸다.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교 창시(610년)를 거쳐 631년 이슬람 세력이 예멘을 지배했다. 당시 예멘을 통치하던 페르시아 총독인 바단(Badhan)은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무슬림이 됐다.

 

시바의 여왕 시절 하나이던 예멘과 에티오피아는 이렇게 이슬람국가와 기독교(에티오피아정교)국가로 갈라섰다. 코란에서도 시바의 여왕을 쉬블림 발키스(Sublime Balkis)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내용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구약성서와 비슷하다.

 

이런 사연을 알면, 커피의 시원지가 에티오피아냐 예멘이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두 나라는 본래 한 왕국이었으며, 커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 에티오피아 하라의 재래시장에서 장의 보고 있는 여인. 각종 향신료와 곡물, 커피 생두가모여 아라비아 반도로 전해진다. 출처=커피비평가협회(CCA)     © 함양군민신문

 

에티오피아에서 동북쪽으로 홍해에 가까운 지역인 하라(Harar)는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종교가 같은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과 주로 교류하고 있다. 하라는 커피열매를 통째로 말리는 내추럴 방식의 커피 생산지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대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좋은 가격을 주며 사가고 있다. 이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아져 하라 커피는 해외시장에서 비싸게 팔린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홍해 쪽으로 갈수록 풍광이 아라비아 반도의 가파르고 거친 계곡을 닮아간다. 하라로 이어지는 2500~2700m의 고산지대는 수많은 화물차량들이 커피나 곡물, 지하자원을 홍해에 접한 지부티(Djibouti)로 실어 나르고 있다. 지부티에 모인 커피는 홍해를 건너 예멘이나 사우디 아라비아로 건너간다. 

 

▲ 에티오피아의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사는 하라는 해발 2000m를 훌쩍 넘는 고산지대에 있다. 홍해에 접한 항구로 가기 위해선 수많은 화물차량들이 하라의 가파른 계곡을 지나야 한다. 거친 길 때문에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출처=커피비평가협회(CCA)     © 함양군민신문

 

커피의 기원을 밝히려는 고단한 여정에서 얻게 되는 소중한 가치는, 갈수록 파편화하는 인류로 하여금 동질감을 곱씹게 만드는 명상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한 나라였고, 한 왕국일 때부터 커피의 기원설이 전해지고 있다.

 

▲     ©함양군민신문

 박영순 프로필

커피비평가협회(CCA) 협회장

경민대 평생교육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前포커스신문 편집국장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및 편집인

미국커피테이스터 감독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스페셜리스트

저서 <커피인문학:커피는세상을어떻게유혹했는가?>(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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